서오능을 찾다 (2016.11.03)
햇살 고운 11월의 한 날 조선의 왕과 왕족이 잠들어 계신 서오능을 찾아, 그들의 생을 더듬어 본다.
조선 초기에는 능과 묘로 구분했으나, 조선 후기에는 능(陵) 원(園) 묘(墓)로 구분하였다. 즉 왕과 왕후, 황제와 황후의 무덤을 "능(陵)"이라 칭하고
왕의 후궁이나 종친, 왕세자 또는 왕세자비, 그리고 황태자나 황태자비의 무덤을 "원(園)"이라 하며, 폐위된 왕이나 일반인의 무덤을 "묘(墓)"라 부른다.
서오능의 배치도(↑)
이곳 서오능은 위와 같이 다섯개의 능(陵)과 두개의 원(園) 그리고 한개의 묘(墓)가 조성되어 있으며,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334-92에 위치한다.
명릉(明陵)(↑)---명릉은 조선 제19대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그리고 제2계비 인원왕후의 능이다.
인현왕후 안장(1701년,숙종27년) 숙종 안장(1720년, 경종 즉) 인원왕후 안장(1757년, 영조33년)
숙종은 제18대 현종의 아들로 1674년 현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인현왕후는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1681년(숙종7년)
가례를 올리고 숙종의 두번째 왕비가 되었으나, 기사환국(1689년)으로 폐위되었다가 갑술환국(1694년) 때 복위되었다.
인원왕후는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1702년(숙종28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 명릉은 인원왕후의 봉분을 동원이강릉(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조성한 능)의 형태로 조성하였다.
수경원(綏慶園)(↑)---조선 제21대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의 원(園)
익릉(翼陵)은 조선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능이다.
인경왕후는 1671년 11세 때 세자빈이 되었으며, 1674년 숙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고, 20세 때 천연두를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
순창원(順昌園)(↑)---조선 제13대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와 공희빈 윤씨의 원(園)
순회세자는 명종과 인순왕후의 아들로 7세 때 세자로 책봉 되었으나 13세에 세상을 떠났다. 공회빈 윤씨는 1561년(명종16년) 세자빈이 되었으나
순회세자가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왕비가 되지 못하였다.
푸른 소나무 사이에 아기단풍이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고 탐방객을 반긴다. (↑)
경릉(敬陵)(↑)---추존 덕종(의경세자)과 소혜왕후의 능. 덕종은 제7대 세조(수양대군)의 맏아들로 1455년(세조1년) 세자(의경세자)로 책봉 되었으나
20세 때 세상을 떠났다. 물론 즉위하기 전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없었으나 훗날 그의 둘째아들 성종이 임금이 되면서 덕종으로 추존 되었다.
(추존(追尊)---추존(追尊)이라 함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왕의 칭호를 붙여 신분을 높여주는 제도를 말함)
소혜왕후는 1455년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며, 1475년(성종6년)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자 인수대비가 되었다. 성품이 총명하고 학식이 깊어
부녀자들의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내훈(內訓)을 책으로 펴내고 한문 불경을 한글로 풀어쓰기도 했다.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으로 조성된 덕종(의경세자)의 능 (↑)
옥산부대빈은 1686년(숙종12년) 숙종의 후궁이 되었고, 1688년에 경종을 낳아 희빈이 되었다. 기사환국(1689년)으로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갑술환국(1694년) 때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었고,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난 후 왕후를 무고한 죄로 사약을 받아 43세로 생을 마감했다.
조선 제19대 숙종의 후궁이자 20대 경종의 어머니 옥산부대빈 장씨(장희빈)의 묘 (↑)
정성왕후는 1704년(숙종30년) 숙종의 둘째아들인 연잉군(영조)과 가례를 올렸다. 1724년 경종이 세상을 떠나고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으며
평생 숙종과 경종의 왕비를 극진히 모시다가 1757년(영조33년) 슬하에 자손없이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 제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능 (↑)
예종은 제7대 세조(수양대군)의 둘째아들이다. 세자였던 형(의경세자,덕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세자로 책봉된 후 19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1년 2개월만에 세상을 떠났다.
안순왕후는 1463년(세조9년)에 세자 후궁 소훈(昭訓)(소훈:조선시대 내명부의 종5품계이며 소훈 이상 양제까지는 사실상 왕세자의 소실임)이 되었고
1468년 예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창릉(昌陵)(↑)---조선 제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능으로 동원이강릉(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조성한 능)의 형식이다.
1470년(성종1년) 예종 안장.
1499년(연산군5년) 안순왕후 안장. 동원이강릉으로 조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