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영월여행

운월봉 2013. 6. 19. 14:22
영월여행 2013년 6월 15일
 
 
동강 요선정 요선암 선돌 청령포

 

---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영월 청령포에서 ---

 

조선의 제4대 임금 세종대왕에게는 장남(문종:조선의 제5대 임금)

둘째아들(수양대군) 세째아들(안평대군)등이 있었는데 적자인 문종은

몸이 약해 걱정이었고 둘째아들 수양대군은 활을 잘쏘고 사냥을 좋아하는

호방한 기질의 왕자였으며, 셋째인 안평대군은 시와 학문을 좋아하여 늘 선비들과

어울려 풍류와 시화를 논하기를 즐겼다고 전한다.(이 외에도 15명의 아들이 더 있음)

1450년(세종32년) 세종임금께서 승하하시자 문종임금이 왕위를 계승한다.

하지만 즉위 2년만인 1452년 다시 문종임금이 승하하시니

문종임금의 외아들 단종임금이 즉위하기에 이른다.

단종의 나이 12살의 어린나이였다.

이무렵 수양대군의 측근에는 한명회를

비롯한 저작거리의 왈패들과 권력을 탐하는

인물들이 그를 따르며 무리를 이루는 시기였던 것으로 묘사된다.

한편 단종의 주변에는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어린 왕의 신변을 보호하고 왕권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당시 병권을 쥐고있던 좌의정 김종서 대감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과

아울러 왕권은 약화되고 의정부가 권력을 남용한다는 비판적 여론이 돌기 시작한다.

김종서의 유일한 견제세력인 수양대군으로서는 신변의 위협까지 느낄 수있는

정황이었다. 1453년 10월 10일 수양은 드디어 선제공격을 감행하니

수많은 왕족과 충신들이 희생된 "계유정난"이다.

 

수양은 정적들을 모두 살해하고 마침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들을 죽인 명목은 '김종서가 황보 인, 정 분 등과 부동하여

장차 안평대군을 추대하려는 모반을 꾀했다'는 것이었다.

정난에 성공한 수양은 친동생 안평을 강화도로 유배 보냈다가

다시 교동으로 보내서 죽였다. 그리고 스스로 영의정부사, 영집현전

내외전, 경연, 춘추, 서운관사, 겸판이병조, 내외병마도통사 등 여러 중직을

겸하여 병권과 정권을 독차지하고 거사에 직, 간접적으로 가담한 정인지, 권람

한명회, 양정 등 자신을 포함한 43명을 정난공신에 책봉했다.

 

1455년 단종은 한명회·권람 등의 강요에 더이상 견디지

못하여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었다.

1456년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응부·유성원 등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모두 처형된 뒤, 1457년 상왕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

그해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숙부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다시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자 노산군에서 서인(庶人)으로 강봉되었으며

10월에는 마침내 죽임을 당했다.